음악가와 요정

BY ALANA JOLI ABBOTT


옛날 옛적에 ‘나비 여왕 왕국’의 남쪽 땅에 알폰소라는 견습 제화공이 살았습니다. 그는 근무 시간에는 꾸벅꾸벅 졸며 꿈을 꾸고, 밤에는 악기를 연주하곤 했기 때문에 정작 구두 만드는 일은 잘하지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는 손에 잡히는 어떤 악기로든 멋진 음악을  연주해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나무 위의 새들도 매료시켰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타를 연주할  때면, 세상이 사라진 것 같았습니다.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 마치 세상에 음악만 남겨진 것 같았죠. 


어느 날, 알폰소가 실종되었을 때 구두 장인은 그가 유랑 음악가들과 함께 도망쳤다고 생각했고, 내심 알폰소를 골칫덩이라고 생각했기에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알폰소의 어머니인 엘리디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알폰소는 항상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었고, 작별 인사 없이 집을 떠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숲 속을 혼자 여행하는 건 위험하다고 경고했지만, 그녀는 아들의 흔적을 찾아 마을 북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운 좋게도 주변 왕국에서 문제 해결사로 알려진 두 소녀 -아마도 훈련 중인 마녀들처럼 보이는- 헬렌과 루시가 같은 길을 따라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영리한 헬렌은 한때 나비 여왕의 왕국에 나타난 괴물을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루시 공주는 머나먼 왕국에 살고 있는 화살 여왕의 자매로, 식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어떤 땅에서든 딱 맞는 허브를 찾아내는 능력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들이 길가 그루터기에 앉아 괴로워하는 엘리디아를 발견했을 때, 루시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헬렌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위로했습니다. 숲에 홀로 있는 낯선 여성을 만나면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상관없이 공손하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디 다치셨나요?” 루시가 물었습니다.


"다친 데는 없어요. 다만 마음이 아파요." 엘리디아가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 실종됐어요. 그런데 누구도 아들을 찾는 걸 도와주지 않아요.” 


엘리디아가 아들이 정말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해왔으며,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고 이야기하자 소녀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여행 중에, 숲의 요정들이 때때로  그들의 궁정으로 아름답고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몰래 데려간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숲에서 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나요?" 헬렌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엘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루시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연주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엘리디아는 두 사람과 함께 마을로 돌아온 후, 다시 멀리 떨어진 숲으로 향했습니다. 루시와 헬렌은 숲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나무꾼의 딸인 헬렌은 밧줄과 담요만으로도 캠프를 만들 수 있었고, 동상에 걸리지 않고 겨울 여행을 하는 법이나 나무와 별들이 보내는 메시지만으로 방향을 알아내는 법을 알고 있었고, 루시 공주는 숲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가장 희귀한 버섯을 채취하는 방법, 밤에만 피는 꽃을 수확하는 방법, 물약을 만들기 위해 악취가 나는 박쥐 구아노를 사냥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디아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헬렌과 루시는 여유롭게 그녀를 위로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작은 숲에 도착했을 때, 루시는 동그랗게 심어져 있는 버섯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은 요정들이 모여 춤을 추는 장소로 알려진 곳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아들을 찾아올게요." 루시가 말했고, 옆에서 헬렌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엘리디아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한 후, 숲을 빠져나갔습니다.


헬렌은 가방을 열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의 가방에는 양털 담요와 많은 밧줄, 그리고 튼튼한 칼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남쪽에서도 아래쪽에 위치한 지역이라 따뜻했기에, 겨울 옷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헬렌은 가지고 있던 도끼를 허리에 차며 숲을 탐험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날 아침에 마을에서 출발하며 가방을 가득 채웠기 때문에 음식도 넉넉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루시의 약초가 조금 부족한 듯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약초를 수집할 수 있기에 큰 걱정은 없었습니다. 헬렌은 마을의 빵집에서 산 판 둘세(Pan Dulce, 멕시코 지역에서 먹는 빵 또는 페이스트리) 꺼내 루시와 나눠 먹으며,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습니다. 헬렌은 요정 숲의 날씨를, 루시는 숲 속의 식물을 잘 알아볼 수 있을 지가 걱정됐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한다면 반드시 실종된 음악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강한 믿음을 다지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요정의 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들 주위에 있던 숲이 사라졌습니다.


발 밑의 땅이 가라앉고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겨우 안정을 찾자 헬렌과 루시는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은 그들이 살던 세상과 거의 비슷한 듯했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나뭇잎과 풀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하늘은 주황빛이었습니다. 시냇물은 마치 마림바를 두드리듯, 바위를 두드려 음표들을 만들어내며 연주했고,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헬렌이 가방에서 나침반을 꺼냈지만 나침반 바늘은 빙글빙글 돌기만 할 뿐 방향을 알 수 없었습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루시는 가방에서 분필 한 조각을 꺼내 푸른 줄기가 있는 나무나 바위의 은백색 면에 표시하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작은 가젤을 발견했습니다. 가젤은 밝은 분홍색 덩굴에 뿔이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젤이 덩굴에서 벗어나려 애썼지만, 그럴수록 덩굴이 뿔에 점점 더 복잡하게 꼬여만 갔습니다. 루시와 헬렌은 칼을 꺼내 덩굴을 잘라 가젤을 구해주었고, 가젤을 진정시키기 위해 속삭이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루시가 물었습니다.


" 몇몇 요정들이 덩굴에 마법을 걸었어.  마법에 걸린 덩굴은 덩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동물들을 잡아 가둬버리지." 작은 가젤은 침울하게 말했습니다.“ 덩굴이 나를 꽉 잡았을 때 목이 거의 부러질 뻔했다니까! 그때 엄청 빨리 달리고 있었거든. 당황하는 내  모습을 보고 저 멀리서 심술궂은  요정들이 낄낄거리며 웃는 소리를 들었어.” 


“목이 꽤 부었구나.” 헬렌이 작은 가젤의 목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습니다. 헬렌이 마지막덩굴을  베는 동안 루시는 가방에서 생강 뿌리를 꺼내 가젤에게 건넸습니다. “이걸 씹어 먹어봐. 부기가  가라앉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가젤은 생강을 먹기 전,  자신의 혀 아래에서 조개 껍질만한 밝고 붉은 돌멩이를 헬렌과 루시에게 건넸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돌을 네 뒤로 던져.” 가젤이 말했습니다. 헬렌은 돌을 가방에 넣었고, 두 사람은 가젤이 숲으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본 후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늦은 오후 무렵, 헬렌은 여우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녀들은 그들이 지나간 길을 계속 표시하며 소리를 향해 걸어갔습니다. 소리가 난 곳에 도착하자, 나무 옆에서 낑낑대고 있는 새끼 여우가 보였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겼니?" 헬렌이 새끼 여우에게 물었습니다. 새끼 여우는 발로 원을 그리며 외쳤습니다. "우리 엄마! 우리 엄마가 나무에 갇혔어요!”


루시와 헬렌은 높게 우뚝 선 나무를 올려다보았습니다. 나무 위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큰 여우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여우는 두 나뭇가지 사이에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작게 만들려고 애쓰며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헬렌은 허리에 밧줄을 묶었고,  루시는 그런 헬렌을 가장 낮은 나뭇가지 위로 밀어 올려주었습니다. 헬렌은 나무에 오르기 시작했고, 루시는 밧줄 끝에 바구니를 달았습니다.  헬렌이 어미 여우가 있는 곳에 다다르자, 가장 가까운 나뭇가지에 몸을 기대고 바구니를 끌어올렸습니다. 


“두려워하지 마.” 헬렌이 말했습니다. 헬렌은 어미 여우가 바구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허리에 두른 밧줄을 풀러 반대쪽 끝을 루시에게 던졌습니다. 헬렌은 천천히 바구니를 아래로 내렸고 루시는 아주 조금씩 밧줄을 풀어 바구니가 흔들리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


새끼 여우는 어미 여우가 안전하게 땅으로 내려오자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질렀고, 어미 여우는 그런 새끼 여우를 핥으며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헬렌과 루시를 올려다보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구했어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어미 여우는 자신의 털 속에서 돌멩이 정도 크기의 붉고 맑은 보석을 꺼내 건네 주었습니다. 루시가 보석을 받아 가방에 넣었습니다. 어미 여우는 “이 숲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걸 뒤로 던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다 나무에 갇히게 된 거지?" 헬렌이 물었습니다.


여우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요정이 장난으로 저를 거기에 가둬버렸어요. 요정들은 그 순간만 즐길 수 있다면, 자신들이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생각조차 하지 않거든요.”


루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습니다 . "하지만 모든 요정이 그렇지는 않을 거야!"


"물론 모든 요정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미 충분히 많은 요정들이 못되게 굴어 왔으니까요." 어미 여우가 고개를 저으며 냉소적으로 말한 뒤, 새끼 여우와 함께 덤불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헬렌은 밧줄을 다시 감아 챙겼고, 두 소녀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요정의 숲을 계속해서 탐험해 나갔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루시와 헬렌은 캠프를 만들기 위해 멈춰 섰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두 사람은 울음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지고 있는 태양의 한줄기 빛이 우거진 숲의 낙엽 사이로 떨어지고 있었고, 그 빛의 끝은 흐느껴 울고 있는 요정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요정은 새끼 여우 만한 크기였고, 옆으로 누워 배를 움켜쥔 채 울고 있었습니다.


어미 여우와 가젤은 요정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지만, 소녀들은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요정에게 다가갔지만, 함정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 요정은 정말 다쳤거나 아픈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야?" 루시가 물었지만 요정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흐느끼며 울었습니다. 루시가 요정의 이마에 손을 대보자 미열이 느껴졌습니다. 헬렌은 요정 옆에 앉아 날개 사이에 손을 넣어 등을 쓰다듬어 주었고, 그러는 동안 루시는 숲 속으로 들어가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데이지나 버드 나무 껍질을 찾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숲 속의 식물들은 그녀가 이전에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섯 개의 뾰족한 별과 나선 모양, 공작 깃털의 눈과 같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 식물들뿐이었습니다.


결국 루시는 한숨을 쉬며 빈손인 채 협곡으로 돌아왔고, 가지고 있던 재료로 차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헬렌은 가방에서 부싯돌을 꺼내 건네 주자 루시는 숲에서 모은 불쏘시개와 연료들을 가지고 불을 피웠습니다. 비록 불길이 이상한 보라색 빛을 띄긴 했지만, 이내 커다랗게 타올랐습니다.  루시는 걱정되거나 긴장이 될 때마다 마셨던 카모마일 차를 끓였습니다. 불꽃과 두 소녀의 따뜻한 온기 덕분인지 요정은 곧 울음을 그쳤습니다. 두 사람이 차를 마시던 찻잔은 그 요정이 들기엔 너무 컸기에, 요정은 양손으로 겨우겨우 따뜻한 차 한 잔을 받아 들었습니다.


"아직 뜨거우니까 조심해." 루시가 경고했습니다. “아직 네가 왜 아픈 건지, 무엇이 잘못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곧 도와줄 수 있을 거야.”


그 말을 들은 요정은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운을 뗐습니다. “다-다른 요정들이 내 날개를 가지고 놀렸어요.” 그녀는 잠자리처럼 긴 날개를 뒤로 펼쳤습니다. 그 날개는 불빛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루시와 헬렌은 숨을 죽였습니다.


"하지만 네 날개는 아주 아름다운 걸!" 루시가 말했습니다.


“제 날개는 너무 얇아요...” 요정은 날개를 다시 접으며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 날개는 투명해요. 궁정의 다른 요정들은 아름다운 색깔의 날개를 가지고 있거든요.” 


헬렌은 날개의 모양과 크기를 보며 살펴본 뒤 말했습니다. “이런 날개라면 정말 빨리 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네가 자유자재로 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  요정은 침울해 보였지만, 그렇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옆으로도 날 수 있을지도 몰라."  루시가 맞장구치며 말했습니다 .


요정이 미소 짓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엄청 섬세하게 돌면서 날 수도 있어." 이야기를 하는 요정의 얼굴이 점차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숲에서 나보다 빠른 요정은 없어!"


헬렌은 나무 줄기에 등을 기대고는, "때때로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다른 사람을 놀리곤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만 사로잡혀서 그 사람이 가진 기술이나 재능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기도 하지."


“때로는 그저 재미로 다른 이에게 무례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 헬렌은 나무에 갇혀 있던 여우를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그런 이들이 너에게 상처 주게 해서는 안 돼. 누군가 그들의 잘못을 꼬집지 않으면 예절이 무엇인지 영영 알지 못할 거야!”


요정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친절하게 누군가의 잘못을 꼬집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친절한 사람이 사랑스러운 차 한 잔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네요."


소녀들과 요정은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루시가 그들이 음악가를 찾아 이곳으로 왔다고 설명하자, 요정은 그들에게 요정 왕궁으로 가는 길을 알려줬습니다. "요정 왕은 당신들을 만나는 걸 별로 달가워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요정이 경고했습니다. "그 왕은 오직 자신의 흥미를 끄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야박한 사람이거든요."


촉촉하게 이슬이 내린 아침이 되었습니다. 요정은 새빨간 보석과 짧은 글귀를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헬렌은 보석과 글귀를 집어들어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으면, 이것을 남겨두어라." 요정의 수수께끼 같은 말과 함께 헬렌과 루시는 요정 왕의 궁정으로 떠났습니다 .


오후가 되어서야 커다란 돌문이 있는 언덕에 도착했습니다. 괴물 몇 마리와 아름다운 요정들이 줄줄이 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루시와 헬렌은 경비병의 눈을 피해 요정들 사이에 슬그머니 줄을 섰고, 경비병은 그들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언덕 안에는 나비 여왕의 홀보다 더 크고, 화살 여왕의 그랜드 홀보다도 더 큰 거대한 홀이 있었습니다. 식탁에는 음식이 가득했지만, 루시와 헬렌은 요정의 음식을 무턱대고 먹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홀의 가장자리에서는 요정들이 춤을 추었고, 그들의 중심에는 황금 왕관을 쓴,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는 키가 큰 요정이 있었습니다. 춤추는 요정들의 뒤에는 어떤 사람이 기타를 치며, 요정 무리를 꿈꾸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루시는 직접 만든 냄새나는 소금 한 병을 가방에서 꺼내 요정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기타 연주자의 평화로운 표정과 달리 손가락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치 한 번도 멈추지 못하고, 며칠이나 연주를 해 온 것처럼…


루시는 노래 하나가 끝나갈 무렵 냄새나는 소금을 그의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게 했습니다 .


"계속 연주해요, 알폰소" 그의 꿈꾸는 듯한 표정이 사라지자 헬렌이 재촉했습니다. 


"아파요."  알폰소가 속삭였습니다.


"자장가를 연주해봐요." 루시가 제안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여기에 왔어요."


알폰소는 고통을 참으며 기타를 연주했습니다.  그의 아픈 손가락이 기타 줄 위를 미끄러지며 아름다운 자장가를 연주했습니다. 자장가를 들은 루시와 헬렌은 하품을 했지만, 루시가 냄새나는 소금을 계속 열어 놓았기 때문에 춤추던 요정들이 모두 잠에 들 때까지 깨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알폰소는 소녀들과 함께 홀을 빠져나갈 때까지 기타를 계속 연주했고, 졸고 있는 경비병 앞으로 지날 때까지만 해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뒤에서 요정 왕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들을 잡아!" 요정 왕이 소리쳤습니다.


헬렌이 가젤에게서 받은 돌을 뒤로 던지자, 마치 가젤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 같은 거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세 사람은 그 바람을 타고 요정 언덕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거세게 몰아치던 바람이 선선한 바람으로 변하며 잦아들자 마침내 바닥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심할 새도 없이 뒤에서 요정들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헬렌이 뒤를 돌아보자, 잔인한 요정 왕과 그를 따르는 괴물 요정들의 무리가 보였습니다. 세 사람은 열심히 달렸지만, 요정들은 점점 가까워졌고 곧 따라 잡힐 것 같았습니다. 루시는 여우에게 얻은 돌을 뒤로 던졌습니다. 그러자 뒤편의 강이 무너져 내렸고 쏟아진 강물이 요정들을 휩쓸고 내려갔습니다 .


하지만 요정 왕은 떠내려가지 않았고, 강을 뛰어넘어 그들의 뒤를 바짝 따라왔습니다. 불그스름한 땅에 둥그렇게 피어 있는 버섯들에 다다르자, 헬렌은 그곳에 요정이 준 마지막 보석을 던졌습니다. 갑자기 숲의 나무들이 우거져 뒤엉키고, 뱅글뱅글 돌며 자라나더니 요정 왕을 그 안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속삭였습니다. "아마도, 그는 나무 안에서 천 년을 보내며 인내심을 배울 것입니다."


헬렌과 루시는 그 목소리가 어디서 들리는지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아닌 숲의 목소리인 것 같았습니다. "요정 왕이 더 화가 날지도 몰라요." 헬렌이 경고했습니다.


숲이 속삭였습니다. " 그러면, 그는 천 년을 더 기다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들의 친절함이 내 안에 사는 생명체들의 마음을 가득 채웠고, 요정에게까지 감동을 주었습니다. 당신들이 일으킨 변화에 감사드립니다."


이윽고 바람은 잠잠해졌고, 숲은 조용해졌습니다. 헬렌, 루시, 그리고 알폰소는 요정의 원에 발을 들여놓았고, 요정의 숲에서 금세 사라졌습니다.


알폰소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견습 제화공 자격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루시는 자신의 동생의 성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화살 여왕이 음악가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엘리디아는 짐을 꾸렸고, 네 사람은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숲 속을 걸어가다 풀이 약간 붉거나 하늘이 주황색으로 보이는 곳을 살펴보면, 수풀 잎사귀 밑이나 버섯 아래에서 신비로운 돌이나 요정의 주먹 크기만한 새빨간 보석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알폰소와 엘리디아는 그들이 어디서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재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헬렌과 루시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문제를 찾으러 숲 속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습니다.